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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gacy of Korea: Unveiling Admiral Yi Sun-sin and the Turtle Warship Kindle Editionby Kwangsoob Ko [한국의 유산: 이순신 장군과 거북이 군함 공개 Kindle Edition 저자: Kwang Soo Ko]

by 소리행복나눔이 2024. 11. 19.

The Legacy of Korea: Unveiling Admiral Yi Sun-sin and the Turtle Warship Kindle Editionby Kwangsoob Ko

한국의 유산: 이순신 장군과 거북이 군함 공개 Kindle Edition 저자: Kwang Soo Ko

 
 
 

 
 
 
The Legacy of Korea: Unveiling Admiral Yi Sun-sin and the Turtle Warship Kindle Edition
by Kwangsoob Ko (Author, Illustrator), Doyle Ko (Illustrator), Anna Ko (Editor)  Format: Kindle Edition

한국의 유산: 이순신 장군과 거북이 전함 공개 Kindle Edition
저자: Kwangsoob Ko(저자, 일러스트레이터), Doyle Ko(일러스트레이터), Anna Ko(편집자) 형식: Kindle Edition


 
*The Legacy of Admiral Yi Sun-sin and the Turtle Ship**

In Korea’s 5,000-year history, Admiral Yi Sun-sin is considered one of the most respected figures, and his legendary warship, the Turtle Ship, is recognized as a symbol of Korea's shipbuilding technology and military innovation. This book revisits Admiral Yi’s achievements and the legacy of the Turtle Ship, which led to the defeat of approximately 700 Japanese vessels and secured victory in the 16th-century war with Japan. Admiral Yi was able to achieve victory in every battle by developing and operating the Turtle Ship—an armored vessel with cannons capable of firing in all directions from the bow, stern, and both sides, allowing his forces to fire safely from within. Admiral Yi and the Turtle Ship were first introduced to the Western world about 100 years ago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figures such as British naval historian Admiral G.A. Ballard and WWII hero B.L. Montgomery helped bring some recognition to his legacy. However, due to a lack of in-depth publications or historical resources available in English-speaking countries, the full historical significance of Yi and the Turtle Ship has not been widely understood internationally.
 
* *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유산**
한국의 5,000년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지며, 그의 전설적인 군함인 거북선은 한국의 조선 기술과 군사 혁신의 상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약 700척의 일본 함선을 격파하고 16세기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거북선의 유산을 되짚어봅니다.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개발하고 운영함으로써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거북선은 선수, 선미, 양쪽에서 모든 방향으로 포를 발사할 수 있는 장갑선으로, 그의 군대가 내부에서 안전하게 포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은 약 100년 전 일본 식민지 시대에 처음 서양 세계에 소개되었으며, 영국 해군 역사가인 G.A. 발라드 제독과 2차 세계 대전 영웅인 B.L. 몽고메리는 그의 유산에 대한 인정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에서 심층적인 출판물이나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여 이순신과 거북선의 전체적인 역사적 중요성은 국제적으로 널리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The Author’s Dedication and Research Background**

This book is the result of over a decade of research by Dr. Ko Kwang-seob, a retired Navy Captain who graduated from the Korean Naval Academy and served as a professor at the Naval Academy, Naval College, and various marine-related universities. Drawing on Admiral Yi’s war diary, his official battle reports to the king, and the records of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this book provides readers with an in-depth understanding of Admiral Yi and the Turtle Ship. In particular, the book includes recent scientifically backed research findings and newly uncovered insights revealed over the past 50 years by Dr. Ko and other Korean scholars.
 
**저자의 헌신과 연구 배경**
이 책은 한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해군대학 및 다양한 해양 관련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은퇴한 해군 대령인 고광섭 박사가 10년 이상 연구한 결과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쟁 일기, 국왕에게 제출한 공식 전투 보고서, 조선 왕조실록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 책은 독자에게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제공합니다. 
특히 이 책에는 최근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 연구 결과와 고 박사와 다른 한국 학자들이 지난 50년 동안 밝혀낸 새롭게 발견된 통찰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Structure and Content of the Book**

The book is organized into seven chapters.
Chapter 1 covers the background of the Imjin War, Admiral Yi Sun-sin’s life, and the unique armament and tactics of the Turtle Ship.
Chapter 2 details the major battles that Admiral Yi participated in, including the Battle of Hansan, where he achieved victory using the crane-wing formation. In this chapter, battle situations are depicted on Google Maps based on historical sources, helping readers easily understand the joint tactics of the Turtle Ship and Panokseon.
Chapter 3 explores Admiral Yi’s leadership and foresight, as he led his forces through outbreaks of disease and famine, preparing for future battles.
Chapter 4 explains the collapse of the Korean Navy under Admiral Won Gyun’s command and Admiral Yi’s eventual reinstatement, including recent research findings that correct historical misunderstandings.
Chapter 5 recounts the miraculous Battle of Myeongryang, where Yi defeated over 130 Japanese vessels with only 13 ships, as well as the rebuilding of the Korean Navy.
Chapter 6 focuses on the Korea-China allied operations, Yi’s collaboration with Chinese Admiral Chen Lin, and Admiral Yi’s final moments in the Battle of Noryang, summarizing Yi’s strategies and tactics in comparison with modern military guidelines.
Chapter 7 reflects on Admiral Yi’s legacy, both as a military leader and as a public servant dedicated to his family and country.

Through this book, the author brings Admiral Yi Sun-sin’s legacy to readers worldwide, celebrating his courage, innovation, and integrity, while offering profound insights into Korean history, culture, and military strategy.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7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는 임진왜란의 배경, 이순신 장군의 삶, 거북선의 독특한 무장과 전술에 대해 다룹니다. 
2장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참전한 주요 전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학익진을 사용하여 승리를 거둔 한산해전도 포함됩니다. 
이 장에서는 역사적 자료를 기반으로 Google Maps에 전투 상황을 표시하여 독자들이 거북선과 판옥선의 합동 전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3장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질병과 기근의 발생을 헤치고 군대를 이끌며 미래의 전투를 준비하면서 보여준 리더십과 선견지명을 살펴봅니다. 
4장에서는 원균 장군의 지휘 하에 있던 한국 해군의 붕괴와 이순신 장군의 궁극적인 복위, 그리고 역사적 오해를 바로잡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설명합니다. 
5장에서는 이순신이 단 13척의 함선으로 130척이 넘는 일본 함선을 격파한 기적적인 명량해전과 한국 해군의 재건에 대해 설명합니다. 
6장은 한국-중국 연합 작전, 이순신과 중국 제독 천린과의 협력,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현대 군사 지침과 비교하여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을 요약합니다. 
7장은 군 지도자이자 가족과 국가에 헌신한 공직자로서의 이순신 장군의 유산을 돌아봅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이순신 장군의 유산을 전 세계 독자에게 전달하고, 그의 용기, 혁신, 정직성을 기념하는 동시에 한국의 역사, 문화, 군사 전략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펌주소]

https://www.amazon.com/dp/B0DN26YZ8S

 

 


이순신의 선조 출전 명령 거부설에 대한 검증연구The Verification Study on Yi Sun-Shin’s Refusal of King Seonjo’s Dispatch Order

1목포해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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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순신의 선조 출전 명령 거부설’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저자의 1차 연구 논문이 공개된 후 관련 학계, 이순신 연구가 및 언론 등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기발표된 논문은 정유재란 시기 이순신과 권율을 지휘했던 4도 도체찰사 이원익이 쓴 장계가 발굴되기 전의 연구였다. 따라서 정유재란 발발 전 이순신의 명확한 작전 계획이나 참전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본 연구 결과는 저자의 1차 연구 결과에 대한 추가적·보완적·검증적 성격을 갖는 후속 연구로, 새롭게 확보된 정유재란 전·후 이원익이 쓴 장계 기록을 기반으로 연구한 내용이다. 이 논문은 정유재란 발발 직전까지 이순신의 생생한 작전 계획을 담고 있는 새롭게 확보된 이원익의 사료를 반영하고 분석하여 최초로 공개한 내용이다. 연구 결과 『선조수정실록』에 근거한 ‘이순신 출전 거부설’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었다.


Recently, the author's first research paper overturning the theory of Yi Sun-Shin’s refusal to dispatch the navy against Japanese invasion was published. Since then, it has received great attention from academia, researchers for Yi Sun-Shin, and the public. In the previously published paper, the research results were derived by analyzing only the historical materials prior to the discovery of Lee Won-ik’s Janggye. There were aspects that did not reflect Yi Sun-Shin’s operational plans or records that could confirm his will to participate in the war. As a result of the study, it was confirmed that the theory of Yi Sun-Shin’s refusal to dispatch the navy against Japanese invasion is not true.


2020.06.15주간경향 1381호

[주목! 이 사람]고광섭 목포해양대 교수 “이순신 장군의 흔적 기리고 싶어”

1597년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수군을 이끌고 법성포와 고군산도 등 남·서해안 몇몇 곳을 전전했다. 큰 승리를 거뒀지만, 수군을 재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해 10월 11일(음력)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낮 12시쯤, 안편도(安便島) 발음(發音)에 도착했다. 바람이 도움이 됐고, 날씨도 화창했다. 뭍에 내렸다. 상봉에 올라가 배를 감춰둘 곳을 빠짐없이 생각하며 살펴보았다. 동쪽을 살펴보니,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 없었다. 북쪽은 나주와 영암 월출산까지 막힘 없이 틔어 있고, 서쪽은 비금도까지 틔어 있어 눈앞이 시원하게 확 틔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음력 10월 29일까지 18일간 머물렀다. 막내아들 면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고 통곡한 곳은 바로 안편도였다. 그러나 이곳이 현재 어디인지는 고증되지 않았다. 이런 지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전남 신안군의 장산도, 팔금도라는 추측만 제기됐다.

지난 3월 발표된 <한국해군과학기술학회지>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안좌도 수군기지에 대한 해양전략적 분석’이 발표됐다. 고광섭·박태용·김득봉 목포해양대 교수는 이 논문에서 현재의 신안군 안좌도가 당시 안편도라는 해양학적 근거를 증명해냈다. 연구를 주도한 고광섭 교수(해군사관학부)는 “2012년 목포해양대로 옮겨오면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 행적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서 “몇 년 동안 안좌도·장산도·팔금도를 실제로 답사하면서 안좌도가 안편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해양대 대학원에서 항법학을 전공했다. 미국 클락슨대 대학원에서는 전자항법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항법 전문가인 그는 2011년까지 해사 교수로 재직했다.

2018년 고 교수는 박태용·김득봉 교수와 함께 <한국항해항만학회지>에 <난중일기> 속 안편도가 안좌도라는 지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장산도·팔금도는 <난중일기> 속 설명과 달랐다. 동쪽 앞에 섬이 있어 목포 쪽을 바라볼 수 없다는 내용과 맞지 않았다.

안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과거의 지리 상황을 간과한 측면이 있었다. 안좌도는 원래 서쪽에 기좌도, 동쪽에 안창도로 나뉘어 있었다. 안좌도는 1970년대 간척사업이 이뤄지면서 두 섬이 연결돼 한 섬이 됐다.

고 교수는 안좌도 중 서쪽 기좌도에 있는 매봉산에 올라가 보았다. 지금은 같은 섬이지만, 동쪽으로 예전에는 다른 섬이었던 안창도가 있어 동쪽 시야를 가렸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묘사한 세 가지 조건(동쪽 섬 시야 가림, 북쪽 나주와 영암, 서쪽 비금도)이 모두 일치했다. 안좌도 매봉산의 존재로, 이순신 장군의 ‘잃어버린 18일’이 역사 속 사실이 된 것이다.

올해 3월 논문에서 고 교수는 안좌도 매봉산 일원이 조선 수군의 전선을 은폐하고 정박은 물론, 자유로운 항해를 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지라는 점을 밝혀냈다. 고 교수는 이순신 장군이 안편도(안좌도)에 상륙한 매년 음력 10월 11일이면 목포해양대 학생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아 추모 행사를 갖고 있다. 고 교수는 “잃어버린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밝혀 후세에 장군의 얼을 이어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고광섭 국립목포해양대 교수 “이순신, 선조 출전명령 거부 사실 아니다”
한국해군과학회지 논문 발표
정유재란 직전 출전요청 사료 분석 확인…기존 학설 뒤집어
2021. 05.05(수) 19:58목포=정해선 기자

 

고광섭 국립목포해양대 교수


충무공 이순신 탄생 476년 기념일을 앞두고 ‘정유재란 직전 이순신이 선조의 출전 명령을 거역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는 주장이 담긴 논문이 새롭게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연구는 정유재란 직전 왜군 침공 전 ‘이순신이 바닷길이 험난하고 출전 해로의 위협이 크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출전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던 기존 학설을 뒤집는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고광섭 국립목포해양대학교 해군사관학부 교수는 지난 4월 발간된 한국해군과학회지 논문지에 게재한 ‘정유재란 시기 선조의 출전 명령과 이순신의 출전 의지 및 출전 불가 사유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그동안 ‘선조수정실록’을 근거로 알려져 있었던 것과 달리 “왜군 침공 전 선조의 출전 명령에 대해 출전하지 못한 것을 두고 출전 불가 사유를 핑계 삼거나 출전 거부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순신 사후 60여년 후에 완성된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 1일자에는 정유재란 직전 선조의 출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적이 필시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릴 것이다. 전함을 많이 출동하면 적이 알게 될 것이고 적게 출동하면 도리어 습격을 받을 것이다’는 이유를 들어 출전을 거행하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에 이순신이 출전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게 됐던 것이다.
고광섭 교수는 논문을 통해 ▲이순신은 왜군 침공 전 선조에게 출전 요청을 할 만큼 출전 의지가 매우 강했던 사실이 사료 분석으로 확인 ▲이순신이 출전 요청 후 출전을 번복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 ▲선조의 출전 허락 명령이 통제사 이순신에게 늦게 도착된 점 ▲적 침공 후 출전로 주변의 위협과 전력이 침공 전보다 오히려 강화됐음에도 부산해역으로 출전을 감행한 점 등을 강조했다.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임하다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 뒤 국립목포해양대학교 해군사관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순신 연구를 시작한 고 교수는 “청년기였던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전시에 국군 통수권자인 국왕의 출전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비춰지는 데 대해 합리적 의문을 가졌고 필시 다른 불가피한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 의문이 평생의 연구 주제가 됐고 이번 논문을 계기로 심층적이고 폭넓게 관련 연구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목포=정해선 기자

 


평생을 해양인재 양성과 이순신 연구에 헌신하다 [NewsMaker.보도]

기사승인 2023.01.05  21:40:07

고광섭 교수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해군 대령으로 전역 하기까지 30여 년 해군에 복무했다. 해군 복무 중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인 사관생도를 교육하며 해군·해병대 장교를 양성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황인상 기자 his@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 중 전역한 고 교수는 국립목포해양대학교 교수로 공채되어 해군과 함께 대한민국 해양력 구성의 한 축인 상선사관 양성 교육에 11년째 헌신하고 있으며, 금년 2월말 41여 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고광섭 교수의 본래 주 전공 분야는 전자공학에 기반을 둔 전자항법·인공위성항법(GPS) 분야이다. 고 교수는 국내에서 항법공학 석사 공부를 마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인 해사에 복귀했다. 30여 년을 해군 장교이자 해사 교수로 해군에 복무하면서 국내의 GPS 전문가로서 해양계 첨단 항법 전문분야 연구와 교육을 선도했다.   

  

41년 공직 마무리하는 충무공의 후예

 

▲ 고광섭 교수

 

고광섭 교수가 늘 밝혀왔듯이 이순신에 대한 관심은 충무공 후예인  해군사관생도 시절부터였다. 해사 생도면 누구나 ‘충무공 정신’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이수해야하지만, 임관 후에는 이순신 연구나 공부는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고 교수 역시 초임 장교 시절부터 이순신 연구에 대한 관심은 많았으나  전공 연구와 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고 교수가 연구하여 논문으로 공개한 내용은 기존의 역사학자나 이순신 연구가들이 반복 인용해 왔던 우리가 잘 몰랐던 이순신 역사에 대한 오류들을 증명하는 데 치중했다.

 

그 첫 번째가 ‘안편도 지리적 위치 오류 확인 및 이순신의 해상 기지 안좌도 수군기지 발견’이다. 명량해전 대승 후 이순신이 적의 보복을 피해 한반도 서남해를 항해하다 안편도라는 섬에 상륙하여 18일간 체류한 적이 있다. 이순신은 1597년 음력 10월 11일 ‘안편도’에 상륙 후 산에 올라 지형정찰 결과를 당일 일기에 기록했다.

훗날 이 섬이 우리 역사 지도에 없는 관계로 신안군 소재 ‘팔금도 또는 장산도’로 추정되어 전해 내려왔다. 그러나 고 교수는 이순신이 일기에 기록한 내용과 실제 지형지물의 방향과 위치가 전혀 다름을 발견하고, 이순신이 상륙한 섬은 당시 기좌도(현 안좌도), 상륙 후 오른 산은 매봉산임을 확인해 2018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두번째는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 1일 기사 오류 확인 및 이순신 항명설 허구 입증’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 대다수의 기억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면되고 백의종군 주요 요인을 정유재란 시 부산으로 쳐들어오는 왜군을 치라는 선조의 출전 명령을 이순신이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순신 항명설은 몇몇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가장 근원적인 사료는 이순신 사후 60여 년 후에 완성된 ‘선조수정실록’의 1597년 2월 1일 기록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이 선조의 명령을 전달받고 몇몇 이유를 들어 출전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나온다. 이게 근원이 되어 수백 년 동안 반복 인용되어 최근까지 이순신의 항명설은 당연시 되었다.

그러나 고광섭 교수는 1차 연구에서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 1일 기록 내용 중 시점, 인물 등의 심각한 오류를 선조실록과 이순신의 장계를 토대로 발견하고, ‘이순신의 출전 거부설 또는 항명설’ 의 근간이 된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 1일 기록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어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 1일 기록’에 오류가 있고, ‘이순신의 항명설’도 사실로 볼 수 없다는 1차 연구 결과는 2차 연구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2차 연구에서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을 지휘했던 4도 체찰사 이원익의 일대기를 기록한 ‘오리선생 문집’ 에 수록되어 있는 이원익의 장계 내용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고 교수는 “정유년 1월 정유재란 발발 당일을 포함한 적 침공 전·후 체찰사 이원익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 내용에는 이순신과 이원익이 함께 논의한 왜군 침공에 대한 이순신의 작전계획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즉 직속 상관인 체찰사에게 보고한 이순신의 작전계획은 ‘부산 앞 바다로 직접 출동해 적을 친다.’였습니다”면서 “오히려 출동 중에 적에게 노출되면 적을 치고 진격하겠다는 매우 공격적인 작전계획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전장에서 이순신과 함께 작전을 논의했던 최고 사령관인 체찰사 이원익의 위와 같은 장계 내용은 선조수정실록 1597년 2월 1일 기록과는 완전 배치되는 것으로 일명 ‘이순신의 항명설’을 뒤집는 결정적인 사료임이 확인된 셈이지요”라고 밝혔다. 이러한 1·2차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작성해 관련 학회 논문지 게재, 언론공개 및 이순신 연구 전문가들과 합동 세미나도 개최한 바 있다.

 

‘이순신학’ 체계 정립과 세계화를 위해 노력할 것

고광섭 교수는 스스로 본인은 공학자로서 해군·해양 전문가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이순신 역사를 바라보면서 합리적 의심이 가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 연구했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에는 2022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정년을 하게 된다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학 강의 최초로 ‘이순신학(개론)’ 1강부터 30강까지 영상을 제작해 전국의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들이 이순신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유튜브에 공개했다고 한다. 특히 제 3강에는 이순신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이순신이 남긴 12 교훈을 정립해 공개했다. 고 교수는 정년 후의 계획도 밝혔다.

 

아직까지 이순신 연구가들이나 학자들에 의한 체계적인 이순신 관련 영문 서적이나 영문 콘텐츠들이 많지 않다면서 앞으로 영문 서적 발간, 영문 영상 제작 및 유튜브 공개 등 이순신 세계화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해군복무 30여 년 및 목포해양대학 교수 11년 등 41여 년 동안 공직 생활을 하면서 충무공 이순신을 롤 모델로 하여, 공직자로서의 명예심과 투철한 국가관을 갖고 절차탁마하며 진충보국의 자세로 오직 대한민국 해양력(Sea Power) 구성 요소의 핵심인재가 될 해양사관의 교육과 양성에 평생을 기여한 고광섭 교수의 끝없는 이순신 사랑과 열정적인 연구 그리고  이순신 정신과 교훈 전파를 기대한다. NM

황인상 전문기자 his@newsmaker.or.kr


 

 

1598 7 19일 아침. 임진왜란에 마침표를 찍은 노량해전이 일어나기 불과 5개월여 앞둔 이 시기, 절이도(현 고흥 거금도) 앞바다에서 왜 함선 100여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을 막아선 건 이순신 장군의 60여척 함대.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학익진(鶴翼陣)을 전개, 왜선 50여척을 수장시키고 대승을 거뒀다.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펴는 모양을 본 뜬 것으로, 원을 그리면서 적을 둘러싸는 전법이다.

 

절이도 해전은 최근까지도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난중일기에는 단 1줄만 적혀 있는데다, 사료가 부족해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탓이 크다.

 

이순신의 잊혀진 해전으로 불리는 절이도 해전을 최근 과학적으로 밝혀낸 이가 있다. 2011년부터 이순신을 연구해 온 목포해양대학교 고광섭(63) 교수다.

 

고 교수는 항법 전문가. 광주고(23회)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한국해양대 대학원에서 항법학을 전공, 미국 클락슨대 대학원에서 전자항법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까지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한 뒤 목포해양대로 자리를 옮겨 이순신 장군 관련 연구에 매달렸다.

 

사학자들은 사료가 없으면 연구에 난항을 겪습니다. 대신 저는 전공 분야인 항법공학을 최대한 활용해 연구했습니다. 실록, 이충무공행록, 난중일기 등을 바탕으로 이순신 장군의 전술진형을 분석, 절이도 환경에 적용해 가장 적합한 상황을 이끌어낸 것이지요.”

 

고 교수는 최근 논문 이순신의 잊혀진 해전 절이도 해전의 교전 상황 및 학익진 연구를 발표, 해군과학기술학회지에 게재했다. 항법, 해양전략·전술 등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거쳐 절이도 해전의 전투장소, 일자, 전투방식 등을 밝혀낸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7 19일 새벽 5시께 조선 수군 경계부대가 적함을 발견한 뒤 긴급 출동, 현 거금도 고라금 해수욕장 앞 우동도 서북쪽 1~2 해역에서 교전했다. 절이도 해역은 교전 공간과 함대 이동 방향 등에서 학익진을 펼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는 만큼, 이순신 장군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승을 거뒀다.

 

“420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당한 가치가 있는 해전이에요. 절이도 해전은 한산대첩에 이어 수적 열세를 학익진으로 돌파한 또 하나의 사례인 셈이니까요.”

 

고 교수는 연구 배경과 관련, “이순신은 나의 숙명이자 사명이라고 답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일 때부터 난중일기를 늘 갖고 다녔으며,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과 리더십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향토사학자 외에는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연구 의지를 북돋았다.

 

충무공의 혼은 우리 호남 지역에 많이 배어 있어요. 저 또한 호남인으로서, 그 정신을 호남인의 정신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의무감도 있지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존경심에 그치지 않고, 그 발자취와 실체적인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논문에 앞서 주목할만한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는 지난 3월에는 난중일기 등에서 등장하지만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던 안편도 수군기지가 신안군 안좌도임을 밝혀내기도 했다.

 

고 교수는 대학에서 충무공 정신과 이순신 리더십을 강의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바다 ·해군 전문가로서 연구를 계속해 추정에 불과했던 난중일기 속 해전의 전투 경과를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순신학, 이순신학개론, 이순신 불멸의 12교훈을 말하다
https://youtu.be/ByVSz1BASqc


 

 

 

 

이순신학개론 제 20강 이순신 항명은 허구, 수십년의 합리적의문 10여년의 연구와 사료 입증
https://youtu.be/sZ71-n6GW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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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학 이순신학개론 절이도해전 실체 공개! 잊힌해전! 학익진으로 왜수군을 대파한 절이도해전! 한 고광섭 교수의 연구 최초 공개
https://youtu.be/c8ER6KKsMgY


 

 

 

 

임진왜란해전 시로 그려낸 13척 기적의 명량해전, 승전 직후 후퇴를 해야 하는 이순신 장군의 가슴아픈 심정과 구국의 심정을 시로 표현하였다.
https://youtu.be/GoJ05_hQY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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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몰랐던 이순신 왜구후손격파기
https://youtu.be/2_exuJWws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