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0에 드디어 난 4500년의 역사를 보았다.
기명옥
"내 나이 50에 드디어 난 4500년전의 역사를 보았다"
이번 여행의 제목이다.
선배의 이집트 여행 권유에 아이들도 어린데다 집안어른들 눈치도 보여서 “다음 기회에 가지요”했던 이집트 여행을 거의 10년을 꿈만 꾸며 History채널과 National geographic 채널로 대신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올 결심했고 인천공항의 면세정 간판들올 보고서야 '이제 드디어 가는 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13시간이건 15시간이건 별 상관이 없었다. 떠난다는 것과 목적지가 이집트라는 게 그저 흐뭇할 뿐!
하루라도 이집트 체류일이 많은 투어를 찾았으나 다 똑같은 이집트 3일,터키 3일, 그리스 3일 등 10일 코스였다.
하나 투어로 떠난 우리 팀은 목포 댁 4명,서울 댁 10명,
총각의사(나랑 취향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서로 같았다). 의사부부, 가이드까지 총 18명이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에 내려다보이는 이집트의 카이로는 그저 지나온 사막고원처럼 무채색의 아파트와 건물들로 온통 모래 색이었다.
약간 실망하며 공함에 내린 우린 기자의 피라미드를 향해 가는 버스 속에서야 ‘흐홈! 이집트만의 독특한 맛이 있군!’하고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도로를 걷는 이들과 같은 속도로 느릿하게 가는 버스 속에서,차도르와 히잡을 쓴 여인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화려한 색의 히잡을 입은 여인들은 그 사회에서는 최고의 멋쟁이나 부유층 같았다.
뒤따라 걷거나 맞은편에서 오는 남자들과는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미리 길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붙어서 걸었다.
이집트 남자들 또한 여성들에게 전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멋진 여성들이 지나가는데 다리 한 번 힐끔거리거나, 몰래 눈알을 굴리는 이도 없고 표정마저 전혀 동요되는 기색이 없었다.
피라미드가 버스 창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러운 햇살임에도 반사 빛이 강해서 눈이부셨다.
4500년 전의 쿠푸왕과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에서 간단치 않은 설명을 실은 거의 듣지 않았다. 내가 직접 만지고 느끼러 왔지 설명이야 TV에서 실컷 들었지 뭐!
고대 이집트석공의 손이 닿았을 그 돌들을 만지며 너무 흥분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one dollar에 낙타를 타고 사진 찍을 수 있는데 약간 위험하니 잘 생각하라는 가이드 말에 ‘아이고 무슨 소리 몽고에서 엉덩이에 멍이 들도록 타 봤는데’ 싶어서 앞장섰다.
터번 사는데 one dollar, 낙타 타고 사진만 찍고 내려 오는데 one dollar. 친구 한 명은 터번을 one dollar에 사서 썼는데 삐둘게 썼다며 바로잡아주고 또 one dollar 내라고 해서 우리는 배꼽 잡고 웃었다. 얼마나들 귀여운지 다행이도 절대 그냥 손 벌리진 않는다.
여기서 사진 찍으면 잘 나온다거나,배 탈 때 손 한번 붙잡아 주고, 화장실에서 화장지 둘둘 말아 건네주고 1달러 요구한다.
매번 기분 좋게 내지만 미처 예기치 못해 없다하면 또 싱긋 웃고 그만이다. 어떤 이들은 "one do,lar 노이로제 걸리겠다", "조상 잘 만나서 공짜로 먹고 산다”고 하지만, 난 이집트인들올 존경한다.
황소 같은 그 한 눈에 그래도 공짜로 주라고 하지 않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위대한 유산올 만들었던 그 위대한 조상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1달러 요구하는 손이 난 그저 아이건 어른이건 귀엽기만 했다.
코가 납작해진 스핑크스 옆에는 보존공사중인 쇠파이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엽서에서 봤던 대로 스핑크스를 세우고 뒷 배경으로 나오는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를 살짝 잘라넣는구도로사진을 찍어봤다
오후에는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넓은 곳을 다 볼 수 없다며 왕조별로 대표적인 방에만 들러 설명을 했는데 다 볼 수 없다는 조바심에 눈을 이리 저리 굴리느라 정신없을지경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래도 투탕카멘 무덤에서 나온 보물들과 마스크, 그리고 관들의 보석세공이었다.
21세기인 지금 어디에 내 놓아도 그 세련됨과 정교함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여러 방의 수많은 거상들을 봤지만(대개 투탕카멘의 마스크처럼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의 비슷한 모습이었다)
어느 거상 앞에 가이드가 설명을 하러 멈춰 섰을 때 그 얼굴을 올려다 보고 깜짝 놀랐다. 가슴이 콰앙쾅 북을 쳤다.
찢어진 눈, 날카로운 긴 코,길쭉한 얼굴. TV에서 보면서 이집트 왕 중에 현명한 개혁자로 생각하는 아멘호테프4세(아크나논)이었다.
‘아! 당신이었군요!’ 그의 무릎에도 닿지 않을 키로 나란히 곁에서서 온기를 느껴보았다.
이번 여행의 최고의 목적지-룩소가 내일이기에 룸메이트와의 얘기도 생략하고 수면제 대신에 준비한(난 여행가면 2시간쯤 뒤척이며 잠들려 애를 써야하는 고통이 있다)
잎새주를 벌컥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아마 10분 후쯤 골아 떨어졌으리라.
다음날 아침 호텔식을 멋 부리며 먹고서 이집트 국내선을 타고 룩소에 도착했다. 나일 강을 (이집트에선 저게 무슨 강? 하면 무조건 나일 강이 정답이다. 이유는 모든 도시가 강 따라 발달했기 때문이다)
사이에 두고 서쪽의 죽은자의 땅(무덤)과 동쪽의 산 자의 땅(신전)중 우선 서쪽에 있는 왕의 계곡으로 향했다. 카이로보다 활씬 더우리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좋은 날씨였다.
왕의 계곡은 단단한 모래흙 언덕에 여기저기 누구 왕 무덤입구라는 안내판이 있을 뿐이었다.
한국 여행객은 워낙 햇볕을 싫어해서(태양신을 섬기던 나라에 왔으니 더울 수 밖에) 장갑 끼고, 목에 스카프 두르고, 모자에 양산까지 완전 무장하여 걷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양산부대만 찾으면 바로 우리 팀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양산 쓴 우리의 행진을 신기한 듯 보거나 사진을 찍곤 한다
왕의 계곡에 막 들어서서 앞서가는 일행을 한 컷 찍고 가는데,무심코 앞에 오는 이들을 보니 하얀 모자 양복 구두까지 멋진 신사 7-8명 사이에 눈에 확 띄는 인물이 있었다.
예의 그 중절모를 쓰고 TV에서보다 훨어 보이는 자히 하와스(Zahi Hawass)박사였다.
이집트 고고학 1인자인 그를 보자마자(어느 유명 인을 봐도 슬며시 피하는 내가) 반사적으로 우와 놀라며 Hellow! 손을 흔들었나보다.
일행과 대화하며 가던 그도 어찌나 반가와 하는 내 모습에 활짝 웃으며 손들어 인사한다.
투트모세1세, 세티2세,람세스2세의 대표적 무덤 3곳만 본다고 한다. 왕들 무덤의 벽화는 후대로 갈수록 더 섬세하고 화려했다.
어제 박물관도 하루 종일 봤어야 했고,왕의 무덤도 하루, 오늘 오후에 가는 카르나크신전도 하루를 잡아야 갈증이 풀릴텐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더운 날씨에 그냥 걷기도 힘들텐데 이 무덤의 벽에 조각과 채색을 했을 걸 생각하며 그저 ‘내가 여기 왔어요. 4천년 5천년의 어마어마한 세월의 역사 뒤로. 바로 그 공간속으로’라며 누군가에게 가만히 속삭여 본다.
다른 일행들 눈치 보느라 거의 걸으면서 보는데도(왕 무덤마다 이집트인 안내인들은 이상하게 내게만 다가와서 후레쉬를 비춰 주며 설명해 준다.
대리석관의 뚜껑 안쪽에도 조각이 새겨져 있다는 것과 관 바닥의 조각이며 미이라를 잘 볼 수 있는 위치도) 실컷 보지 못하고 대충 보고 나오면 서울이들은 벌써 양산을 떡 들고 다음 코스로 같려고 기다리고 있다.
시간 잘 지키는 난 어쩔 수 없이 총각의사와 함께 제일 느림보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싫은 표정 없이 매번 나를 기다려주는 서울이들이 고맙기는 하지만 속이 상했다.
하얀 돛단배 펠루카로 나일 강을 건너니 동쪽의 카르나크신전이다. 내가 나이 먹으며 깨달은 것은 사람이나 여행 심지어는 신에게도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면 고맙기만 할 걸 미리 바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이 온다는 것이다. 애초에 큰 기대하지 않고 그냥 보리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서 보시압! 카르나크신전은 경외!그 자체였다. 조각들, 특히 거대한 열주 거기에 새겨진 화려한 문양들, 더군다나 채색까지 되어 었다니……
설명을 들어야하나, 사진을 찍어야하나,만지고 냄새 맡고 다녀야할까 망설일 때 고맙게도 총각의사가 전용 사진사처럼 내 사진을 찍어줬다.
너무나 고마워서 그리고 행복해서 륵소에서 찍은 사진들은 이제까지의 내 사진 중에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운 표정이 되었다.
우리 막내 형민을 바라볼 때 가슴 저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아지랑이 같은-그런 행복이 가슴에서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누군 내 사진에서 열과 행복으로 발그레한 볼을 보고 날씨가 더웠나 보다하지만 남편은 금방 알아챘다. 엄청 좋았고, 무지 행복했었음을.
밤에는 마차를 타고 재래시장과 마을을 갔는데 마을 앞길가에 얼굴은 깨어지고 몸통만 남은 작은 스핑크스들 위에서 아이들이 무심히 놀고 있었다.
룩소를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유도 모르고 설명도 안되는 눈물을 남이 볼까 얼른 훔치는수밖에....... '
그랬다.
나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해 준 세 왕의 무덤 관리자들. 매번 일행보다 늦게 나오는 나를 “괜찮아요 편히 보세요”하며 기다려 준 김덕희 가이드.
이집트에 열광하는 나를 말없이 (자신도 사진 찍을 시간조차 없이 바쁜 중에도) 자청해서 전속 사진 기사를 맡아준 총각의사 김선생.
출발 아침 3가지 격려 말로 나 혼자 가는 여행을 덜 미안하게 해 준 고마운 남편(1.사소한 이유로 인해 즐거운 여행을 방해받지 말고,2.사고 싶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3.열가지를 다 볼려고 욕심내지 말고 편하게 일곱만 보고 즐겨라)
나는 여행 중 4500년 전의 과거와 현재의 내가 같은 공간에서 ‘통함’에 전율을 느꼈고
가까운 내 남편에서부터 일행,그리고 이국인까지도 나의 마음을 읽어 주었다는 ‘인간끼리의 통함’에서도 큰 기쁨을 안고 돌아왔다.
아직도 그 행복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내 저 깊은 심연에 뿌리내리고 앉아 수시로 솔솔 피어 나온다.
람세스를 읽으며 그렇게 궁금해 했던 ‘설화석고로 빚은 그릇’은 아이보리와 노란 병아리 색이 섞인 반투명한 것으로 유리나 도자기, 돌에서의 느낌과도 다른 우아함이 있었다.
이 설화석고로 빚은 그릇을 사지 못한 점과 4600년 전의 거대한 쿠푸왕의 배와 사막과 아스완, 아부심벨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접으며,이제 케냐를 꿈꾼다.(2006.5.1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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