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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영상

(영화) [열여덟 번의 선물 18 Presents, 18 regali] 2020

by 소리행복나눔이 2021. 12. 13.

열여덟 번의 선물 18 Presents, 18 regali, 2020

 

넷플릭스 예고편, Eighteen gifts NETFLIX Trailer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날들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은 궁극적인 삶의 완성이자 마지막 종착지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은 아니다. 살아서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 더 일찍 죽음의 그리자가 드리우고,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해악인 생명에게는 죽음의 신마저 외면할 때가 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일수록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아이러니는 전지전능한 신의 부재증명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임신부가 뱃속의 태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말이다.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는 실재했고, 실제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날 영화인 <열여덟 번의 선물(18 presents, 2020)>이 바로 그것이다. 프란체스코 아마토(Francesco Amato)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뱃속의 아기만 세상에 남겨놓고 연기처럼 사라진 엄마의 이야기이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에게서 18년 동안이나 생일선물을 받는 딸의 이야기이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죽음을 앞둔 한 여자의 곁을 지키다가 세상에 홀로 태어난 어린 딸을 돌보는 서글픈 남자도 있다.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사실혼 관계인 남자는 아내와 딸을 지극하게 돌보는 순애보 속의 순정남이다.

문제는 엄마 없이 태어난 어린 딸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점 비뚤어진다는 것이다. 엄마의 제삿날이 자신의 생일날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점점 사춘기의 광풍 속으로 빠져든다. 주인공 안나(Benedetta Porcaroli)의 삶은 그렇게 18번째 생일까지 빠르게 나아간다. 안나는 반항적이고 거친 10대로 성숙해졌고, 무모하고 제멋대로인 행동은 그녀의 수영 팀 동료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악의와 광기로 가득 찬 그녀의 태도는 슬프고 상처받고 외로운 영혼을 가리기 위한 두꺼운 갑옷인 셈이다. 아버지는 더 이상 그녀에게 이성을 강요할 수 없고, 그녀의 성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아버지와 다투고 집을 나온 안나는 술집에서 사고를 친 후 달아나다가 우연히 빗길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안나를 친 여성은 안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아빠와 살던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된 것을 알아차린 안나는 달력을 보고 자신이 18년 전의 과거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안나를 차로 친 사람이 바로 자신의 엄마라는 것도 알게 된다. 안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3개월 전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안나는 엄마 주변을 떠돌며, 자신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마가 자신을 위해 죽기 전에 어떤 노력들을 하게 되었는지도 목격하게 된다.

안나가 아빠와 심하게 다투고 가출한 그날은 공교롭게도 18년 전 엄마 엘리사(Vittoria Puccini)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날이기도 했다. 모녀 사이임을 모르는 엄마는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이 낯선 소녀에게 묘한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낀다. 아빠는 아이를 포기하고라도 치료를 시작하자고 엘리사를 설득하지만 엘리사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태어날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딸이 18세, 즉 성인이 될 때까지의 생일 선물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안나도 애증으로 뒤범벅된 감정을 조금씩 추슬러 간다. 자신의 반항기의 근원을 알게 되면서 부모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동화되는 것이다.

 안나가 태어나기 직전, 수술실에서 엄마는 태어날 아기에게 마지막 힘을 다해 편지를 쓴다. “엄마는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 인생이란 뭔지 어떻게 살아갈 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네게 고스란히 알려주고 싶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네 곁에 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운명이 허락하지 않네. 아마 화가 나겠지. 이유를 찾으려고 할 거야. ‘왜 하필 나지?’ 나도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으려 했단다. 근데 이유 따위는 없어. 삶이 놓여 있을 뿐이지. 화내거나 슬퍼하면서 사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믿어줘. 그리고 넌 웃을 때 더 아름다워…”라며 마지막 18번째 선물을 편지로 남겨놓고 떠난다.

엄마를 만나 엄마의 사랑을 확인한 안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아빠와의 화해는 물론 엄마가 바랐던 책임감 있고 아름다운 성년으로 살아갈 준비를 마친 뒤였다. 안나의 시간여행은 엄마가 마련한 선물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영화는 타임슬립(Timeslip)이라는 판타지 장치를 통해 안나와 부모의 화해를 이끈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상투적인 신파요소가 가득하지만 실화를 극화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영화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지키려는 모성애와 엄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사춘기의 반항기로 이어지다가 극적인 화해로 귀결되는 과정은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시나리오 구성상 스토리텔링의 치밀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의 끈을 놓고 벌어지는 한 가족의 농밀한 사랑이야기는 감동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저해하지 않는다. 때문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폭력과 액션, CG가 아닌 순수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추천해 드릴만한 영화이다. 마지막 18번째 선물이 무엇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과정도 재미있다. 이탈리아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판타지드라마로 극화한 <18가지 선물>은 카타르시스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