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7] 익사한 후배에 바친 '친구'
비 흠뻑 맞으며 맨발로 명동 왔다갔다… 김민기 옆에서 난생처음 자유를 느꼈다
바닥에 주저앉아 연주했지만 고난도 기타주법 선보여
아끼던 후배 눈앞에서 잃고 그의 부모님께 가던 기차서 高3 김민기, 명곡을 만들어
가수 윤형주
비가 많이 쏟아지는 하루였다.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우리는 신발을 벗고 걷기 시작했다. 명동성당에서 미도파 백화점까지 7번 정도 왕복했다. 온몸이 젖어들었고, 눈썹에 떨어진 빗방울로 앞을 보기 어려웠다.
처음이었다. 어릴 때 비 오는 날이면 장화와 우비,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배웠다. 그랬으니, 김민기의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 기억나는 건 없다.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왜 걷기 시작했는지, 왜 신발을 벗었는지, 왜 그렇게 많이 왕복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난생처음 느낀 자유의 느낌만이 또렷하다. 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서울 경기고등학교 3년 후배다. 그러나 학교 관련 모임에서 그를 본 적이 없다. 학연을 따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서울 명동 YWCA 노래 모임 '청개구리'에서 그를 처음 봤다. 무대에서 그는 남달랐다. 의자 없이 바닥에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공연했다. 그때 불렀던 노래가 밥 딜런의 '두 번 생각하지 말아요, 괜찮아요(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다. 그는 아르페지오 주법 중 '3 핑거(three fingers)'란 주법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 통기타 가수 중 이 주법으로 완벽하게 반주하며 노래 부르는 경우는 퍽 드물었다. 그만큼 어려웠다.
느낌도 독특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법한 얼굴인데, 마치 음악을 다 꿰뚫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곡 자체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많이 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가사였다. 완전히 매료됐다.
이미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의 약자)'로 활동한 바 있던 김민기였다. '도비두'는 경기고등학교 동기 김영세(현 이노디자인 대표·아이리버 MP3 디자인으로 유명)와 함께 결성한 듀엣 이름이었다. 김영세가 먼저 제안했다. 김영세는 도비두로 활동하기 앞서 경기고 동기 이규원(가구사업가)·조기현(미국 뉴욕 파슨스 대학 교수)과 함께 '다이아몬드 밴드'를 결성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트윈 폴리오 때문이었다. 당시 다이아몬드 밴드는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모두 갖춘 밴드였다. 기타 두 대로 활동하는 트윈폴리오에 비해 음악성이나 감동이 떨어진다는 회의감이 들었던 듯싶다. 결국 이들은 해체를 결정한다.
대신 다이아몬드 밴드는 '도비두'의 씨앗이 됐다. 밴드 구성원 중 리드 보컬과 세컨드 기타를 맡았던 김영세가 김민기에게 듀엣을 제안했다. 이미 김민기는 클래식 기타 연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상태였다. 그렇게 결성된 도비두는 1970년부터 '청개구리'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초기엔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 Mary)'나 밥 딜런 등의 포크송을 불렀고 후기엔 비틀스나 김민기의 자작곡을 불렀다.
당시 김민기가 자주 불렀던 노래 중 하나가 '친구'란 자작곡이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로 시작해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달리는 기차 바퀴가 대답하려나'로 마무리 짓는 구슬픈 노래다. 그는 중앙선 야간열차에서 하룻밤 새에 이 곡을 썼다. 후배 김성범을 기리는 노래다.
김민기는 어릴 적부터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해왔다. 열성적인 리더로 '타이거' 호칭을 얻기도 했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그는 꾸준히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그 행사 중 하나가 동해에서 열린 지역단위 대회 '캠포리(Camporee: 캠프와 잼버리의 합성어)'였다.
거기서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가 아끼던 후배 김성범이 수영 중 익사했다. 누군가 김성범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 역할을 김민기가 맡았다. 늦은 밤에 그는 홀로 중앙선 야간열차에 올랐다. 새벽 서울 청량리역에 도착하는 완행열차였다. 그 기차 안에서 '친구'를 썼다. 선배로서 애통한 마음과 후배와 나눈 우정의 흔적, 이를 삼킨 검푸른 바다, 죽음의 공포, 끊임없는 기차 바퀴 소리 등을 모두 이 노래에 담았다. 한 고등학생이 제 마음을 담아 만든 이 노래는 지금도 종종 불리는 명곡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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