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록시'를 개장하고부터 송창식선생님은 그곳에서 쉼없이 쭉 공연을 계속하고 계시면서 지금까지 미사리의 7080공연의 아이콘이 되었고 2013년 5월 3일 '록시'에서 '쏭아'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하게 됩니다
그러다 2022년 8월에 쥔장이 바뀌면서 '록시'라는 옛이름으로 현대식 무대를 겸비한 새로운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창식사랑이라는 팬카페가 2001년부터 만들어지면서 팬들은 몇차례 '록시'에 들러 송샘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였고 그러다 잠시 침체기를 겪다가 그 후 2008년 팬더54라는 제 닉네임으로 창식사랑 TWO팬카페와 홈페이지를 새롭게 만들고 팬을 모집하여 2011년부터는 선생님과 공식적인 만남과 더불어 쏭아정모와 정기모임을 개최하며 1400명에 가까운 팬회원과 함께하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송샘께서 2007년에는 송샘의 환갑기념을 구 '록시'에서 지인들을 모시고 주최하였고 2023년 올해는 희수연(77세 생신)을 이 곳 '록시'에서 뜻깊은 행사를 하였습니다. 우리운영자들부부도 초대를 해 주시어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아래사진은 카페닉네임 바래미님(김태중)이 촬영하신 사진을 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2년 8월에 '쏭아'에서 1996년부터 사용하던 '록시'로 다시 개명하고 리빌딩하고 무대를 LED 3D로 무대를 바꾸어 현대적인 모드로 재 개장하였습니다.
2023년 3월 12일(일) 송창식선생님의 희수연(77세 생신)에 아내와 함께 '록시'로 초대 받아 다녀왔습니다.
가수 김민기님, 김도향님, 양희은님, 김세환님, 조영남님, 최백호님, 남궁옥분님, 한영애님, 채은옥님, 박강성님, 유리상자 이세준님, 박학기님, 말로님, 양하영님, 부부듀오 '마니', 함춘호, 조소련, 목비를 비롯하여 지인 김성수(신부) 대주교님, 문광스님, 차병직변호사님, 강근식기타리스트, 이상벽사회자님, 공연기획사 하우성대표등 모두 축하하시러 오셨네요
한편, 윤형주님은 공연관계로, 이장희님은 외유중으로, 알리는 조모상으로 불참을 알려왔습니다
간단한 송샘의 감사인사와 선물증정 그리고 후배 가수 몇 분의 축하공연도 곁들었어요
송창식선생님 부디 오랫동안 건강하시고 오랫동안 행복한 공연을 부탁 드립니다
[양희은님과의 인연]
과거 통기타의 메카인 '오비스캐빈'의 골든 타임에서 노래한 송창식은 자신의 시간을 10분 남겨 놓고 내려와 양희은이 노래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바 있다. 덕분에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양희은은 세상 앞에 설 수 있게 됐다.
양희은은 "훗날 형은 살면서 양희은 빼고 그 누구도 추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창식형의 옛 노래를 들으며 우리의 가버린 청춘도 아련히 아팠고, 지금 이순간의 함께하는 무대도 감격이었다"고 남다른 감회를 전했었다.
김성수주교님인터뷰 2010년12월24일
[김성수(신부) 성공회 대주교님] 에 대한 조영남님의 글을 소개한다
김성수 신부님(전 성공회대 총장)이 등장한다. 독자님들께선 잘 나가다가 웬 신부님? 하실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자리에 강원룡 목사님과 김장환 목사님, 그리고 한 분 더 김수환 추기경님까지 모셨어야 한다.
이분들이 못 나오신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시차다. 이분들은 내가 이미 가수로 성공하고 나서 만났던 분들이시다.
만찬에 나오셨던 김성수 신부님은 초장에 우리 쎄시봉 식구들과 함께 우리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동고동락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쎄시봉 훈련소(?)에는 두 분의 스승. 현실 담당 똘강 이백천, 영혼 담당 김성수 신부님이 성립된다고 봐야 한다.
김 신부님과 우리는 만나자마자부터 급격하게 친해진다. “왜 성직자 티가 안 나냐” “왜 천주교 신부가 결혼했냐” “왜 하필 외국 여자와 결혼했냐” “우리 같은 껄렁패와 함께 놀면 신부복 벗게 되는 거 아니냐”, 집요하게 물어도 늘 허허 웃으셨다.
길을 가다가 지나가던 사람이 무례한 행동을 보이면 김 신부님은 당신의 신분도 까맣게 잊고 “저눔의 자식이!” 한다.
난 또 꼬박꼬박 “아이그! 신부님이 무슨 말을 그렇게 얘들처럼 해요” 하면 “야! 시캬 신부는 사람이 아니냐?” 한다.
우리 일행은 걸핏하면 인천 모처의 신부님 사택으로 쳐들어가곤 했다.
거기엔 갓 결혼한 새 신부(김 신부와는 다른 의미다) 외국 여자가 있었다.
우리는 거길 가서 술을 내놔라, 밥을 해내라, 간식을 내와라 하면 외국 아내는 군말 없이 꼬박꼬박 해온다.
우리는 눈치로 알 수 있다.
우리 김 신부님이나 신혼의 외국 아내는 전혀 싫은 내색을 안 하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보살폈다.
거기 가면 일단 배고픔이 해결되고 잠자리도 해결되었으니 우리가 얼마나 자주 갔겠느냐 말이다.
독자님들께선 우리의 송창식과 특히 인천 건달패 출신이었던, 세상을 떠나가신 박상규 형의 식성을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었다. 우리가 술타령과 밥타령으로 밤을 꼬박 지새고 아침을 만나면 그날이 일요일에 틀림없는데 우리더러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는 것이 너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래라저래라 푸시가 없었던 거다.
우리는 도대체 성공회라는 게 무엇인지, 교회를 다니면 금방 성공한다는 뜻일까. 그때는 그걸 몰랐다. 아니다. 관심도 안 뒀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선교 같은 일에 관심을 안 두는 김성수 신부님을 그냥 주변머리 없는 개뼉따귀 신부님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어 미국엘 가서 종교에 관해 공부하면서 그때야 아하! 그게 바로 영국의 헨리 8세 때 왕손을 못 이어가던 본부인을 내치고 앤 불린이라는 다른 왕비를 맞을 때에 지구상 최대의 권한을 쥔 로마 황제로부터 꼭 이혼을 허락받을 필요 없이 법적으로 교황의 영역에서 벗어나 영국만의 교회를 만들자 해서 종교사적으로 분리가 된 영국 기독교가 바로 성공회였던 것이다.
[쎄시봉과 '똘강' 이백천님]
조영남님 글중에서 옮긴다(일부생략)
이백천 선생은 재미있어서 우리 모두와 가까운 분이 아니었다.
수많은 쎄시봉 어른들 중에 유독 우리들과 단연 마음이 통했던 분이시다.
그때 우리는 그냥 붙어살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선생은 10년 후, 20년 후에 봐도 매번 똑같은 모습이었다. 늘 젊은이와 함께 있었다.
쎄시봉이 경영 문제로 문을 닫으면 계속 이어서 ‘르시랑스’ ‘청개구리’ 등으로 젊은이들을 따라 옮기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백천 선생은 영원히 늙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나 나한테는 내 인생 전체에서 최초이자 최후로 결코 녹슬지 않는 스승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백천, 조영남님이 지어준 ‘똘강’ 별명 좋아해
이백천 선생의 가르침은 사실 심플하고 간단했다.
내가 배운 건 두 가지다. 첫째는 좋은 가수가 되려면 노래할 때 너무 잘 부르려 들지 마라.
잘하려고 하면 욕심이 생겨 흐름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둘째는 니가 가지고 있는 기량의 70%만 사용하라. 나머지 30은 다음 공연을 위해 비축해둬야 한다. 신기했다.
이 가르침은 내 아버지 조승초씨가 나더러 맨날 해주었던 말씀이시다.
“놀멘놀멘하라우.” 덤비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얘기다.
이백천 선생의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오버하지 말라는 뜻이다. 힘 빼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여북하랴. 78년에 쓴 자전적 소설의 제목이 바로 ‘놀멘놀멘’이었다. .
나는 백천 선생의 조언을 평생 지키려고 애를 썼고 실제로 써먹어 오늘에 이르렀다.
내가 백천 선생이 주신 가르침에 보답한 것이라고는 냇물을 뜻하는 백천의 ‘천(川)’자를 충청도 사투리로 바꿔 ‘똘강’이라는 별칭 혹은 애칭을 지어드린 것뿐이다.
지금도 우리 쎄시봉 친구들 사이에는 똘강으로 통한다.
똘강 선생은 『이백천의 음악여행』에서 “조영남이 장난삼아 지어준 ‘똘강’이라는 별명이 묘하게 좋았다”라고 썼다.
[‘가선(歌仙)’ 송창식을 만나다]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를 언급할 때 가왕(歌王) 조용필, 가황(歌皇) 나훈아와 같이 별칭을 붙여주는 경우가 있다.
이번 한국학 에세이의 주인공인 송창식 역시 ‘기인’이나 ‘도인’, ‘밤창식’, ‘씨크릿 창식’, ‘음유시인’ 등과 같은 다양한 별명들로 불리고 있지만 나는 그를 특별히 ‘가선(歌仙) 송창식’이라는 호칭으로 불러보고 싶다.
2003년 처음 이분을 만난 이래로 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쉼 없는 연습,
그리고 그 어떤 고승 못지않은 수련과 삶의 철학에서 깊이 감화된 바 있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1975년에 가수왕 타이틀을 한 번 차지한 이후로 1등을 유지하거나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곁에서 그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는 마치 ‘노래하는 신선’과 같이 세간사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음악의 세계에서 소요(逍遙遊)하며 노닐고 있을 뿐이다.
2020년 연말, 오랜만에 그를 만나 그간의 안부와 그동안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 뜻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았다.
차병직변호사님은 항상 송샘의 매니저같은 분이시고 선생님의 자료도 많이 가지고 계시지만 후에 선생님평전을 기획하고 계신다 하우성기획사대표는 2010년부터 불어온 세시봉열기를 일으킨 전국투어의 기획자이십니다
특히 차변호사님께서는 제 해남 매월리 시골집에 방문하셔서 여름밤 한 밤을 같이했던 추억이 있는 분입니다
이상벽님이 기억하는 송창식
"내 기억으로는 홍익대학교 잔디밭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기타를 쳤는데 그중에 송창식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쎄시봉으로 데리고 간 거야. 그 것이 하나의 전환점이 됐지"
김민기님과 송창식샘의 인연
60년대 후반의 '트윈 폴리오' 시절까지만 해도 번안곡을 부르는 가수였던 송창식이 본격적으로 작곡을 결심한 계기는 김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70년, 솔로로 독립하여 창작곡 '창밖에 비오고요'를 발표했지만, 본인의 표현으로는 욕먹지 않을 정도의 곡이어서 앨범에 한번 실은 거였다고 한다.
김민기가 1971년, 아침 이슬을 비롯하여 전체를 자신의 자작곡으로 채운 자신의 1집 앨범 '아하 누가 그렇게'를 냈을 때, 송창식은 그 앨범을 듣고 큰 충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때부터 송창식과 김민기는 서로 각별한 사이가 되었는데, 이후 송창식은 김민기와 공동으로 만든 두번째 앨범과 초기의 최대 걸작인 '나그네' 등의 명반을 연이어 내놓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김민기가 78년 살벌한 유신 독재 시대 때 공장의 불빛이란 노래극의 음반을 녹음할 때, 선뜻 자신의 녹음실을 빌려 줬던 사람이 바로 송창식이었다고 한다.
만약에 누군가가 밀고를 했더라면 송창식도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서 고문 당하고, 활동 금지 처리된 뒤 그날로 가수 생명이 끝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용기라 평가하지 아니할 수 없다.
조영남이 말하길 김민기와 함께 송창식은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결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송창식샘을 곁에서 꾸준히 도와주신 최**사장님이십니다. 고마움을 전합니다
초대받은 팬카페 운영자님들... 항상 고맙게 송샘을 지켜주십니다
<송창식샘 희수연 영상1 20230312>
[송샘가족분들]
[연예계 지인들]
[희수연 세레모니]
<20230312 송창식샘 희수연 영상2 (핸드폰 촬영 영상)>
<20230312 송창식 님 희수연(喜壽宴) 77세(캠코더 촬영 영상)>
[후배가수들의 축하 공연]
<송창식샘 희수연 영상3 축하공연(핸드폰 촬영 영상) 20220312>
<20230312 송창식 님 희수연(喜壽宴) 축하공연(캠코더 촬영 영상)>
송창식선생님 희수연을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송선생님을 비롯한 희수연에 오신 분들 모두가 우리들의 문화생활에 얼마나 긍정적이고 좋은 향기를 주신 분들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곁에서 이 분들께서 들려 주신 음악들이 주는 가치를 보고 들으면서 외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함께하였을것입니다
비록 이젠 다들 그리고 같이 몸은 늙어가지만 결코 마음만은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오늘도 이 분들의 삶과 음악으로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겠습니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송창식선생님께서 오랫동안 건강하신 모습으로 우리 팬들 곁에 계시어 행복한 공연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편집: 팬더54(치의학박사 김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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