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심란하다
가을이 심란하다
어제처럼 준비 없이 맞는 이 가을을
낙엽이 실어 나르는 소슬바람 내 안에 드는데
아무 일 없는 듯 넘길 수 있을까
거울처럼 투명해진 하늘을
가으내 아무렇지 않게 올려다볼 수 있을지
가을은 늘 불편하다
어느덧 매미 소리는 풀벌레 소리로 잦아들고
한여름 치열한 대결을 거둔 들판에 서서
한 가닥도 버릴 수 없는 가실볕에
벼나 수수나 강아지풀은 마침내 여물어
낮게 낮게 고개 숙이는 경건함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머잖아 마지막 한 잎마저 벗어던질 나목은 지천인데
아무 일 없는 듯 더불어 지날 수 있을지
새의 속깃털처럼 소슬바람 따라
언제든지 떠나갈 수 있도록 나 또한
마음 깊은 곳, 무거운 것들 다 비워낼 수 있을까
아침 이슬 몇 모금으로 다시 살아나는
희디흰 구절초처럼 초연하게 이겨낼 수 있을지
가을은 왠지 심란하다
■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중심으로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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