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매월리의 편안한 휴식...
  • 매월리의 석양...
  • 매월리의 환한 꽃
시인 박병성님의 시와 함께

[박병성시집] 17. 교동도 앞바다

by 소리행복나눔이 2023. 10. 24.

교동도 앞바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교동도 앞바다>


카라디오 잡음에 섞인
이산가족의 울음소리 얼어붙은 
설날 아침, 결빙의 검은 강바닥 
강물은 흘러도 흐르지 못한다

 


두고 온 고향이 영롱한 별빛이라면 
서울에 불시착한 가장家長,
삶의 무게만큼 그 중력으로 낙하하여 
잘 닦아진 구두 한 켤레로 남아있는 
한강대교 밑에서도
쏟아져 내린 별빛을 데리고 강물은 흐를 수가 없다 

 


이제 검은 강물은
시간과 함께 거꾸로 흘러
증기 기관차의 비명 같은 기적소리가 줄달음질친다 
순간 굉음과 함께 한강 인도교는
소용돌이치는 비명으로 가라앉는다 
영문도 모르고 채
푸른 강물 위에 흩어지는 하얀 꽃잎들

 


때 늦은 노들섬 진혼제로 
그 억울한 영혼들 건져도 보지만 
가슴 가슴팍마다
녹슨 파편 조각 하나씩 뽑아도 보지만 
강물은 검게 멍든 자리에서 흐를 수 없구나

 


억울한 영혼들아
이제 그만 너희 눈물 보태어 
흐르고 흘러 하구로 가자


임진강,
아호비령 줄기에서 뿜어낸 물줄기 
휴전선 철조망에 여기저기 찢기고 
목함지뢰에 발목도 잘리고 
뿍뿍 기어서 기어서
기어이 한탄강 작은 여울을 안고
한강과 뜨겁게 포옹하지 않느냐


박연폭포도, 송악산 자하동 계곡도 서러운 
핏발선 동토 거쳐
성엣장으로 울멍울멍 흘러온 예성강도 
마침내 한강과 은밀히 몸을 섞지 않느냐


다른 색깔로 흘러온 강은 서로 섞여 
하늘과 바다가 진보랏빛 노을로 
온통 한 빛깔이 되고
교동도 앞바다는 푸지게 되살아나지 않느냐 


억울한 영혼들아 이제 가자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파도보다 먼저 
새 생명의 갯내음으로 맞아주는 
서해 바다로 이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