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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병성님의 시와 함께

뻐꾸기 소리 꿈의 향기처럼 /박병성

by 소리행복나눔이 2024. 10. 21.

 

뻐꾸기 소리 꿈의 향기처럼         /박병성 

청춘은 사랑이 깊지 않아 
그리움만 커지는 것일까 

창밖 빗소리에  
선생님 목소리는 무거워진 눈꺼풀에 아련히 쌓이고 
아카시아 숲속 어디선가 울어대던 뻐꾸기소리 

잎새마다 매달린 빗방울에  
눈부신 햇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그놈은 
아카시아 향기가 되고 
눈이 부신 꿈이 되어 
계림 동산을 온통 축복으로 가득하게 했지 

그때부터 그놈을 찾으러 
소맷귀 걷어올리고 선걸음으로 교문을 나서 
실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보며 
이 골짝 저 거리를 찾아 헤매었을 거야 



그러나 회탁(灰濁)의 도시, 
'서울의 봄'이 휘몰아친 눈보라 군단에 
꽃잎은 너무 일찍 그렇게 지고 
여태껏 압화(壓花)처럼 눌린 여한(餘恨)의 도시 
5월, 무등산 장불재 가는 길에서 

금남로 바리케이트 위를 쓩-쓩 날으던 
대인시장 어머니 주먹밥 같은 이팝 꽃이 
아카시아 향기 묻어  
쌀알갱이는 여기저기 흩어지는데 
반가운 그 뻐꾸기소리가 
너무도 가까이서 들리는 거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여태 안고 사는 부채(負債), 위로라도 하듯 
곡예 비행하는 뻐꾸기 


그리움은  
자기를 들여다볼 줄 아는 이에게만 보이는지 
바로 그  뻐꾸기 소리 
놀에 물든 규봉암 풍경소리와 함께  
아카시아 꽃잎으로 하롱하롱 흩어지고 
우수수우수수 날리고 하는 거야 

언제쯤 우리는  
가슴과 가슴에 얹힌 돌덩이로 
섬과 섬 사이에 징검돌 놓아 놓아 
하나가 될까 

이 땅의 무거운 노둣돌 하나 지고 살아온 
친구들의 허옇게 센 머리, 
쓸쓸한 등을 바라보며 
따라나서는 발걸음은 허전거리는데 
우리는 이제 무엇을 찾아 떠나는 것일까 

 


바람은 떠나가기 위해서 부는 거라고 
우리 또한 예서 머무는 게 아니라고 
우리 또한 하나하나  
그리움을 접기 위해 떠나는 거라고 
머리 맞대고 꿈을 풀어 떠난 백두산 여행길, 

장백산 깊은 숲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뻐꾸기 소리에 또다시 이끌려 
금강협곡 미인송 팔짱 끼고 
긴 행렬 우리는 또 무엇을 찾아 떠나는 길인가 

지금은 남의 땅, 서파 오름길 
석고대죄하는 사람처럼 묵묵히 오른다 

이윽고 눈 씻어 부릅뜨니 
잔잔한 호수 속에 새파란 하늘이 내려앉았다 
아득한 옛적, 하늘이 내려와 앉은 호수 
天池다 


멀리 조약돌 하나 내던지면 쩌-엉 금이 갈 
明鏡止水, 
여태 씻지 못한 죄의 그림자라도 비칠까 
하늘과 물이 두렵다 

저 멀리 동파쪽 호숫가 
남과 북이 신화처럼 만나 하나 된 웃음소리 
옷소매 붙잡아 돌아서는 발길 주저주저한데 
백두봉과 향도봉이 시린 눈에 어른거린다 

오랜 이명(耳鳴)처럼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느 친구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락과 함께 
기껏 남의 땅 딛어딛어 
여기까지 오게 한 아련한 꿈들,
그리고 장백산의 속곳들, 
中朝국경비에 걸쳐두고 뒤돌아서지만 

하늘의 호수가 남긴 온몸의 전율, 그러나 
그 떨림 속에 가슴 한 곳이 휑하다 


여태 남겨둔 그리움 반쪽을 만난 후유증일까 
반도의 등줄기 
산과 강이 비롯한 백두에 서서 
허리 가를 수 없는 天池를 보고 또 보아 
가슴에 꼭꼭 담아 뱉지 못한 말들이 
더 아프다 

아카시아 동산에서, 
5월, 장불재 가는 길 위에서,  
살아갈수록 외로워지므로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할 미련
그리움 하나하나 접기 위해 떠난 길 위에서, 

 

 

만지면 부서져버리는 그리움처럼  
닿지 않는 섬과 섬 사이 
이 땅, 우리들의 담고 살아갈 새벽별 하나로 
뻐꾸기 소리는  
오랜 꿈의 향기로 남아 있나 보다 

 


  <2024년 10월에 >   

 

광주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을 맞이한 헌 시                                  

 

 

 

 

 

To Treno Fevgi Stis Okto(기차는 8시에 떠나네)/Nicos(니코스)연주